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버지니아텍 참사 생존자, 총기규제 캠페인에 헌신

2007년 버지니아텍 참사 당시 총격을 받고 살아남은 17명의 생존자 중 한 명인 콜린 고다드가 미디어를 통한 총기사용 규제 캠페인에 적극 나서며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25세인 고다드는 총격사건의 영웅 중 한 명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사건 당시 버지니아텍의 노리스홀에서 불어과목 수업을 듣고 있던 그는 총소리를 듣고 가장 먼저 경찰에 전화를 했다. 결국 그는 4군데나 총상을 입었지만 그의 휴대폰을 넘겨받은 동료 학생이 신고를 완료했고 3분 후에 경찰이 도착함으로써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의사로부터 다시 걸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던 그는 다행히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버지니아텍을 졸업했고 그 후 미국에서 총기사고를 줄이기 위한 활동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졸업과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큰 총기규제 단체인 '총기폭력 예방을 위한 브래디 캠페인(Brady Campaign to Prevent Gun Violence)'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한 그는 소속 단체를 설득해 전국의 주요 총기 박람회 현장을 돌며 총기구입이 얼마나 쉽게 이뤄지는지를 몰래카메라로 촬영해 홍보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실제로 그가 촬영한 동영상에는 신분증 확인도 없이 현금만으로 총기를 구매하는 장면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최근 총격사건과 그의 활동에 대한 기록과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리빙 포 32"(Living for 32)를 만들어 버지니아 대학(UVa)에서 상영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총기에 대한 법은 바뀔 수 없거나 심지어 바뀌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그 전제를 부정한다. 우리는 바꿀 수 있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야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정부 소속 기술자인 아버지와 평화봉사단 자원봉사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따라 여러 개발도상 국가들을 여행했던 그는 총격으로 인한 부상에서 회복된 후 아프리카 남서해안의 마다가스카르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인턴십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그는 조승희가 정신 상담을 받을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에서도 쉽게 총기를 구입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이용성 기자

2011-04-19

조승희 범행전 받았던 정신과 진료기록 공개

2007년 4월 발생한 미국 버지니아텍 총기사건의 범인 조승희가 범행 전에 받은 정신과 진료기록이 19일 공개됐다. 조승희의 가족이 이날 배포한 진료기록은 한동안 행방이 묘연한 상태에 있다가 약 5주 전 로버트 H. 밀러 버지니아텍 의료센터 전 소장의 집에서 발견됐다. 진료기록은 8~10쪽 분량으로 3차례에 걸친 조승희의 상담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버지니아텍은 진료기록을 직접 나눠줬고 AP도 사본 한 부를 입수했다. 조승희의 정신과 진료기록은 사생활보호법에 따라 가족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문제의 진료기록은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던 조승희에 대해 대학 의료당국이 적절한 사전조치를 취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라는 점에서 총기사건 조사과정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그간 소재파악이 안돼 갖은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밀러 전 소장은 2006년 2월에 버지니아텍 의료센터 소장직을 그만두면서 짐을 쌀 때 개인서류를 담은 상자에 조승희의 진료기록을 우연히 넣었으며 최근 상자를 처음 열었다가 기록을 발견, 바로 의료센터에 넘겼다고 해명한 바 있다. 2007년 4월16일 조승희는 버지니아텍 블랙스버그 캠퍼스의 기숙사와 강의실을 돌아나면서 총기를 난사, 학생과 교수 32명을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했다. 조승희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캠퍼스 총기난동으로 기록됐다.

2009-08-19

'2000만불 배상하라' 버지니아텍 유가족 소송

2007년 발생한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이 주정부와 학교당국 교직원 카운슬링 센터 등을 상대로 총 2천만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페어팩스 카운티 법원에 제기했다고 미 언론들이 17일 전했다. 총기사건 당시 사망했던 줄리아 캐슬린 프라이드와 에린 니콜 피터슨 학생의 유가족들은 소장에서 주정부와 학교당국 등의 의도적인 무관심과 부주의가 총기난사 사건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주장하면서 유족당 1000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이들 두 유가족은 희생자 및 부 2007년 발생한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이 주정부와 학교당국 교직원 카운슬링 센터 등을 상대로 총 2천만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페어팩스 카운티 법원에 제기했다고 미 언론들이 17일 전했다. 총기사건 당시 사망했던 줄리아 캐슬린 프라이드와 에린 니콜 피터슨 학생의 유가족들은 소장에서 주정부와 학교당국 등의 의도적인 무관심과 부주의가 총기난사 사건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주장하면서 유족당 1000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이들 두 유가족은 희생자 및 부상자 가족 가운데 주정부가 제시한 합의를 거부했던 사람들로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해 대학측과 관계당국을 상대로 법적절차를 밟을 수 있는 기한이자 총기사건 2주기인 이날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버지니아텍 찰스 스티거 총장과 마크 맥나미 학장 웬델 플린첨 관할 경찰서장 등이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학 이미지에 미칠 타격을 최소화하는데만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캠퍼스 주변에서 두 차례의 살인사건이 있었지만 학교 당국은 버지니아텍을 '자녀들을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학교'로 외부에 알리는데 주로 신경을 썼다고 주장했다. 또한 유족들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인 조승희의 행동에 대해 "교수진과 경찰이 주목을 한 이후에도 교내외의 카운슬링 센터가 조승희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나머지 유가족들은 재정적 보상 등 총 1100만달러에 달하는 주정부의 화해안을 받아들이면서 법적투쟁을 포기했다.

2009-04-17

[버지니아텍 참사 2주기 현장르포] '유족들, 음악으로 치유됐길'

16일 버지니아텍 총격참사 2주기 추모행사에서 장중하면서도 애절한 추모곡을 연주해 유족과 학생들의 심금을 울린 ‘윈드 앙상블’의 지휘자는 한인 입양아 출신 교수였다. 윈드 앙상블의 지휘자이자 버지니아텍 음악학과 조교수인 트래비스 크로스 (31·사진)는 “참사 당시에 버지니아텍에 있진 않았지만 오늘 추모 공연을 지휘한 것은 아주 어려웠다”고 감회를 밝혔다. 크로스 교수는 세인트 올라프 칼리지 음악학과를 졸업하고 노스웨스턴대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뒤 버지니아텍에는 올해 조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밴드 (윈드 앙상블) 멤버 중에도 당시 총격 사건으로 숨진 학생이 있었다”며 그런 의미에서 밴드에게 버지니아텍 참사 추모공연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전했다. 버지니아텍 학생들로 구성된 윈드 앙상블은 희생된 단원을 기리는 의미에서 지난해 추모식부터 추모 공연을 해왔다. “음악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준다고 믿습니다. 오늘 공연이 희생자 유족과 학생들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으면 합니다.” 그는 “추모식 중에 세계 각국 출신인 희생자들의 이름이 불려지는 것을 들으면서 새삼 버지니아텍이 전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한국계로서 나 또한 버지니아텍의 국제적인 모습의 일부분인 것을 자랑스럽게 느낀다”고 새로 호키가 된 소감을 말했다. 박진걸 기자·박성실 기자

2009-04-16

참사 2주년 맞은 버지니아텍 '슬픔 극복하고 이제 미래로'

악몽과도 같은 조승희 총격 참사 2주년을 맞은 16일 버지니아텍(VT) 캠퍼스. 차분하고 절제된 분위기 속 캠퍼스 곳곳엔 “Hokies United (하나된 호키들)”라는 문구가 새겨진 진홍색 셔츠를 입은 학생과 관계자들로 붐볐다. 이날 학교당국의 결정으로 수업은 없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캠퍼스에 모였다. 2년 전 불의의 사고로 희생된 학생과 교수 32명을 추도하는 일련의 행사에 참가기 위해서였다. 오전에는 32명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3.2마일 달리기 대회가 열렸다. 모두 37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달리기가 끝난 뒤 달릴 때 입었던 복장 그대로 학교 중심부에 자리잡은 드릴 필드에 모였다. 달리기 참가자 이외에도 학우와 동료들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재학생, 교수진은 모두 1만여명에 달했다. 드릴 필드는 VT 상징색인 진홍색으로 물들였다. 정오가 되자 학교 밴드인 윈드 앙상블의 장중한 추도곡으로 추모식이 시작됐다. 찰스 스테거 버지니아텍 총장은 추도사에서 “오늘은 버지니아텍 가족들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추모식을 통해 과거의 슬픔을 이겨내고 내일을 향해 나가자는 미래 지향적 연설을 했다. 그는 “부상에서 회복한 학생들의 용기, 도전을 잊어선 안되며 희생당한 모든 젊은이들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며 희생자들을 추도했다. 스테거 총장은 이어 “우리 마음 속과 세계의 평화를 위한 여정을 계속해 나가자”며 학생들을 격려했다. 스테거 총장의 추도사가 끝나자 32명 희생자들의 이름과 약력이 낭독됐다. 일부 학생들은 친구의 이름이 불리자 참사의 악몽을 떠올리며 흐느껴 울었다. 추도식에 참석한 조셉 (19·1학년) 군은 “총격 참사 당시 숨진 메리 리드와 같은 고등학교 (애난데일 고교)를 나왔다”며 “고등학교 시절 잘 알진 못했지만 자주 봤던 그를 추모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 버지니아텍에 입학했기 때문에 참사 당시엔 학교에 없었지만 오히려 참사때문에 버지니아텍에 지원하려는 의지가 더 강화됐다”고 말했다. 총격참사를 통해 버지니아텍 구성원들이 더 단결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희생당한 동료 교수 (조셀린 노왁)를 추모하기 위해 왔다”는 천샤왕 연구교수는 “언제나 희생자 유족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들이 어서 비극의 악몽을 지우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추모식이 끝난 뒤에도 이날 오후 내내 버지니아텍 곳곳에선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행사들이 개별적으로 열려 학생과 유가족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특히 15일 자정 드릴필드에서 불을 밝힌 추모의 촛불은 종일 타오르다가 16일 오후 8시 일몰과 함께 시작된 촛불추모행사가 끝나면서 꺼졌다. 범인 조승희 등 30명이 사망했던 노리스 홀은 사건 발생 2주년을 앞두고 지난주 다시 개관했다.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장소라는 편견이 사라질 만큼 깔끔하게 리모델링 됐다. 노리스 홀 3층에는 과거의 비극을 회상하는 대신 밝은 미래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현대적 컨셉을 도입했다. 콘크리트 벽은 유리벽으로 바뀌었고 타일 대신 나무가 바닥에 깔렸다. 3층에는 평화·폭력예방연구센터 (Center for Peace Studies and Violence Prevention)가 들어섰다. 대학 측은 “총격참사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와 반폭력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랙스버그=박진걸 기자·박성실 기자

2009-04-16

버지니아텍 참사 2년 지났어도···희생자 유가족 고통 '여전'

한국계 미국인 조승희의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꼭 2년이 됐지만 희생자 유가족들은 여전히 후유증과 싸우고 있다. 참사 현장이었던 버지니아텍의 ‘노리스 홀’은 리모델링을 거쳐 ‘평화 및 폭력방지센터’라는 평화의 공간으로 거듭났지만 유족의 상처마저 리모델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센터의 소장을 맡게 된 저지 노웍 교수는 14일 “어제 노리스 홀을 찾았는데 솔직히 가슴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며 “끔찍한 참사가 일어난 그 장소에 평화센터가 들어서는 것이 마음 편하지는 않다”고 털어놨다. 노웍 교수는 참사 당시 노리스홀에서 학생들에게 프랑스어를 강의하던 아내를 잃었다. 그래도 그는 평화센터 설립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것이 참사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센터는 이미 폭력에 노출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각종 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참사 2주년이 되는 오는 16일 버지니아공대의 모든 수업은 휴강된다. 대신 노리스홀에서는 ‘폭력 및 폭력방지센터’ 개소식과 함께 캠퍼스 곳곳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촛불 추모행사가 마련될 예정이다. 유족들에게는 가족이 끔찍한 참변을 당한 이 대학 캠퍼스를 방문하는 것이 슬픔을 극복하는 방편이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환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뉴저지주 플레밍턴에 거주하는 마이클 폴 씨 부부는 여전히 버지니아공대 캠퍼스를 찾는 것이 두렵다. 참사 당시 아들을 잃은 이들은 16일에 학교 대신, 아들이 묻힌 집 근처의 묘지를 찾을 계획이다. 안정을 찾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간 유족들도 있지만, 폴 씨 부부와 같은 유족들은 학교 당국의 당시 대처에 적개심을 갖고 답답한 심정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은 사건 당일 학교 당국이 취한 조처에 대해 아직도 납득할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분개하고 있다. 대학 측은 참사 당일 아침 일찍 범인 조승희가 기숙사에서 2명의 학생을 총기로 살해했음에도 수업중단 등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2시간여 뒤 노리스홀에서 30명의 교수와 학생이 희생되도록 사실상 방치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폴 씨 부부는 범죄에 대응하는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대학 측 관리들이 긴급상황에 대한 결정을 너무 쉽게 내렸다면서 “스티거 총장과 마주 앉자 진실하게 토론을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런 자리를 정식으로 대학 측에 요청하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는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라며 “진실을 알지 못 하면 상처는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스티거 총장은 “이미 유족들과 만나 대화를 했었고 자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누구와도 만나 대화할 것”이라며 “유족을 도울 일이 있다면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건 관계없이 무엇이든 다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조승희가 왜 이런 끔찍한 참사를 벌였는지 정확한 배경은 밝혀지지 않아 사건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버지니아주 경찰국은 범죄 동기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만한 결정적인 증거물인 조승희의 휴대전화기와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 측은 수사를 계속하고는 있으나 수사 규모를 점차 줄여가고 있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참사 이후 문제를 일으킬 만한 학생들과 소통을 넓혀왔다. 이 대학 상담센터의 상담 건수도 사건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또한 다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총기난사 사건으로 가족을 잃거나 중상을 입은 사람들은 사건 이전에 비해 대학 캠퍼스 내 치안 강화와 총기 규제를 더욱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내 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참변이 벌어졌던 버지니아공대의 상처는 사건이 있은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2009-04-15

버지니아텍 참사 2주기, 희생자 추모행사 열려

국내서 단일 총기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 2주기를 맞아 이 대학 캠퍼스에서는 16일 오전 0시부터 자정까지 희생자 32명을 기리기 위한 촛불집회와 마라톤대회 등 다양한 추모행사가 펼쳐진다. 13일 버지니아텍 대학에 따르면 2년전 총격사건이 발생한 16일 오전 0시를 기해 추모 촛불을 점화하며 이 촛불은 학군 사관생도들의 '감시' 속에 온종일 타오르게 된다. 이어 오전 8시에는 북쪽 교정 출입구 부근에 있는 동창회관에서 캠퍼스 중앙 잔디밭인 드릴필드에 마련된 추모기념관까지 3.2마일 구간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마라톤 행사가 거행된다. 마라톤 구간은 희생자 32명을 상징한다. 추모 마라톤 대회에는 이날 현재까지 2000여명이 넘게 참가를 신청했으며 학교측은 선착 접수자 500명에게 추모 티셔츠를 제공한다. 이날 정오에는 캠퍼스 추모기념관에서 학교 전체 추모집회가 열린다. 이 곳에는 당시 총기난사로 사망한 교수 5명과 학생 27명을 기리는 개별 추모석과 희생자 및 부상자 23명을 위한 중앙기념탑이 놓여있다. 정오 추모행사 이후에도 캠퍼스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나 글 낭송 음악작품 발표 공연 등의 행사가 마련돼 있다. '평화연구폭력방지센터'라는 이름으로 거듭난 총기난사 사건 현장인 노리스홀에서는 이날 센터 오픈 하우스 행사가 계획돼 있다. 노리스홀은 100만달러를 들여 지난해 가을부터 내부 공사를 해 지난 11일 다시 문을 열었다. 총기사건 당시 아내를 잃은 버지니아텍 원예학과장 출신 저지 노웍 교수가 '평화연구폭력방지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이어 일몰 시간대인 오후 8시께 학군 사관생도들의 의장대 시범과 함께 드릴필드에서 촛불 추모집회가 시작된다.

2009-04-14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